왔어?”
크리스티나가 응접실로 들어오는 레이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살가운 표정이었다.
크리스티나의 시선이 레이나를 훑어내렸다.
“…….”
레이나는 크리스티나가 선물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준 호의를 받아들일 때 자신에게 너그러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탁.
문이 닫히자 레이나는 시선을 내리며 치맛자락을 들고 살짝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
“……아가씨.”
그리고 순간적으로 자신의 행동에 멈칫했다.
아차.
무의식적으로 하녀가 아닌 귀족식의 인사가 나왔다.
무도회 때문에 너무 이 행동에 익숙해진 탓이었다.
크리스티나는 하녀가 선 넘는 것을 용인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
레이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긴장시켰다.
그동안은 피하지 않기 위해 몸을 긴장시켰지만, 이번에는 막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얼굴에 상처가 생기면 안 되었다.
하지만 크리스티나는 마음에 드는 듯한 미소를 짓고 레이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울리는구나. 아주 우아해.”
“…….”
비꼬는 건가, 화가 난 건가 생각해 봤지만 크리스티나의 표정은 흡족했다.
크리스티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레이나 주변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
어느새 크리스티나가 레이나의 손을 감아 잡았다.
그리고 말없이 거울 앞으로 끌어당겼다.
“……?!”
크리스티나가 거울 앞에 레이나를 세우고 뒤에 선 채 함께 거울을 바라보았다.
“흠.”
크리스티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레이나는 그 눈빛을 알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보석을 바라보는 눈이었다.
“자세도 완벽해졌고……. 드레스도 좋네. 내가 고른 게 어울릴 줄 알았어.”
레이나는 어색해하면서 시선을 내렸다.
“……감사합니다.”
크리스티나가 거울 너머로 시선을 맞추며 웃었다.
그리고 다시 레이나의 손을 훅 끌었다.
“이리로.”
“…….”
레이나는 얼결에 그녀에게 손을 끌려 안쪽 방으로 통하는 문을 넘었다.
복도 쪽으로 향한 문이 아닌 내실로 향하는 문이었다.
집무실처럼 보이는 방을 거쳐 또 다른 방을 넘어가자, 레이디의 내실로 보이는 방이 나타났다.
처음 들어와 보았지만 레이나는 그것이 크리스티나의 방이라는 걸 곧바로 알아보았다.
소파 위에 놓인 크리스티나의 보석함.
등받이에는 크리스티나가 걸치는 모피.
소파 등받이에는 크리스티나가 팔에 걸치는 모피가 걸려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크리스티나의 보석함이 열린 채 놓여 있었다.
그리고 거울이 딸린 화장대 위에는 크리스티나가 쓰는 화장품과 향유 병이 여러 종류 놓여 있었다.
크리스티나는 그대로 레이나를 데리고 자신의 화장대 앞으로 왔다.
레이나는 영문을 모른 채 응접실에서 깊은 방으로 끌려온 것을 의식하며 조금 긴장했다.
크리스티나 아가씨는 응접실에서도 태연하게 내 옷을 벗길 수 있는 사람이다.
내실에서는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
크리스티나는 레이나를 세워 둔 채 향유 하나를 골라 집어 들었다.
하얀색 꽃잎이 다섯 개 달린 압화가 박혀 있는 크리스털 병이었다.
그녀가 돌아섰다.
“이게 좋겠구나.”
“……?”
크리스티나가 자신의 손목에 그것을 한 방울 떨어뜨리고 문지른 뒤 레이나의 코앞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어때?”
고급스러운 꽃향기가 퍼졌다.
크리스티나가 쓰는 물건은 모두 의심할 바 없는 최고급이었다.
“……좋아요.”
크리스티나가 웃고 향유 병의 뚜껑을 닫았다.
“매일 머리에 발라. 윤기가 나게 해 줄 거야.”
“…….”
그리고 크리스티나는 그것을 병째로 레이나에게 건네주었다.
레이나는 얼떨떨하게 그걸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크리스티나가 향유 병을 건네준 손으로 레이나의 손을 다시 잡아 보며 살짝 찌푸렸다.
“손에도 바르는 게 좋겠구나. 거칠어.”
“…….”
크리스티나가 찌푸린 표정을 풀고 시선을 들어 올려 레이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손톱, 머리카락, 피부. 이런 데서 귀족은 티가 나는 법이야. 신경 써. 누구도 널 무시하게 두지 마.”
“…….”
“장갑을 벗지 않으면 어차피 손은 아무도 모르겠지만 머리카락은 한눈에 보이는 부분이니.”
레이나는 고개를 숙여 향유 병을 내려다보다가 입술을 살짝 물고 입을 열었다.
“……제가 귀족 흉내를 내는 걸 싫어하시는 줄 알았어요.”
“내가?”
크리스티나가 웃은 채 고개를 갸웃했다.
“이 모든 걸 내가 하자고 했다는 걸 잊어버렸니?”
레이나가 약하게 웃었다.
그리고 응접실 밖에서 기다리던 브로디에게 들고 온 것을 가져오게 했다.
“…….”
크리스티나가 레이나가 건넨 신문을 받아 들었다.
레이나가 말했다.
“사실 이걸 보고 아가씨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
거기엔 대 귀족가의 하녀가 가문의 약점을 잡아 아가씨의 남편과 아가씨의 자리, 이름까지 가로챘다는 루머가 적혀 있었다.
딱히 누굴 지목해 말했다기보단 관심을 끌기 위해 지어낸 괴담처럼 보였기에 대놓고 고발이나 폭로를 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용은 이름만 적히지 않았을 뿐 그들의 이야기를 알고 적은 것이었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온라인홀덤 있고, 언제든 이름을 적어 폭로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나도 이 비밀을 휘두르고 싶다는 암시.
크리스티나의 시선이 신문 위에 놓였다.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저는요, 아가씨.” |